1373(공민왕 22)~1444(세종 26). 자(字)는 신지(新之), 호(號)는 사봉(沙峰), 시호(諡號)는 공숙(恭肅). 엽(曄)의 아들. 1396년(태조 5) 생원(生員)으로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예문 춘추관(藝文春秋館)에 보직되었고,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사간원(司諫院) 우헌납(右獻納)․집의(執義)․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형조(刑曹) 참의(參議) 겸 지도관사(知都官事) 등을 역임했다. 1415년(태종 15) 승정원(承政院) 동부대언(同副代言)․좌부대언(左副代言)을 거쳐 세종(世宗)이 즉위(卽位)하자 이조(吏曹)․병조(兵曹) 참판(參判)․강원도(江原道) 관찰사(觀察使)․예조(禮曹) 참판(參判)․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고, 1430년(세종 12) 공조(工曹) 판서(判書)가 되었다. 이듬해 병조(兵曹) 판서(判書)를 거쳐 1438년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인순 부윤(仁順府尹)을 지내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승진하여 궤장(几杖)을 하사(下賜)받았다. 우의정(右議政)에 추증(追贈), 공주의 명탄서원(鳴灘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