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철종 9)~1932. 자(字)는 만초(萬初), 호(號)는 석주(石洲),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문인. 어려서 학문을 용모가 특출하였고 향리 사림(士林)의 거성(巨星)이며 선각자로 한일합방 후에 만주로 이주하여 조국 광복운동에 종사하며 부민단(扶民團)을 조직, 단장이 되었고, 1919년 3․1운동 때는 한족회(韓族會)를 조직, 교육사업에 주력하였다. 남만(南滿)의 군사기관으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하여 독판(督辦)이 되었고 1926년에는 상해 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이 되어 활약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어 1932년 5월 향년 75세로 병사하였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 장(單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