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4(선조 27)~1614(광해군 6). 자(字)는 이원(而遠), 호(號)는 퇴촌(退村), 시호(諡號)는 충정, 언청(彦淸)의 아들. 김치원(金致遠)의 문인. 1576년(선조 9) 진사(進士)가 되고, 1586년(선조 19)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589년 예조 정랑(禮曹正郞)으로서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가서 종계(宗系)를 변무(辨誣)하고 돌아와 사섬시(司贍寺) 첨정(僉正)에 올랐다. 이어 지평(持平)으로 정여립(鄭汝立)의 모반(謀叛) 사건 후에 논공 행상의 불공평을 논하다가 파직, 이듬해 종계 변무의 공으로 광국 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무릉 부원군(茂陵府院君)에 책록, 충훈부 도사(忠勳府都事)에 발탁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세자(世子)를 성천(成川)으로 시종, 이듬해 사성(司成으로 왕을 호종(扈從), 군기시 정(軍器寺正)이 되었다. 1596년 헌납(獻納)․장령(掌令)을 거쳐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고, 1600년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이어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으로 명나라 경리(經理) 만세덕(萬世德)의 접반부사(接伴副使)가 되었으며, 도총관(都摠管)․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거쳐 1603년 공조 판서(工曹判書)가 되고, 1605년 호조(戶曹) 판서(判書)․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역임했다. 1611년(광해군 3)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서 앞서 임진왜란 때의 호종의 공으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라 무성부원군(茂盛府院君)에 피봉(皮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