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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송윤씨] 윤자운(尹子雲)

작성일 : 2017-11-17 14:01

1416(태종 16)1478(성종 9). ()는 망지(望之), ()는 낙한재(樂閒齋),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판서 회()의 손자, 1438(세종 20) 진사(進士)가 되고, 144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검열(檢閱)이 되었으며, 1450(세종 32) 집현전(集賢殿) 부수찬(副修撰)으로 수사관(搜査官)이 되어 정인지(鄭麟趾) 등과 고려사(高麗史)의 편찬에 참여했다. 이어 이조(吏曹) 좌랑(佐郞)을 거쳐 1456(세조 2) 대호군(大護軍)․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가 되고,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에 올랐으며, 동부승지(同副承旨)를 거쳐 460년 도승지(都承旨)에 승진,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야인(野人)의 토벌에 출전했고, 다음해 이조(吏曹) 참판(參判)으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후 인수부윤(仁壽府尹), 경기․충청․전라․경상도의 도순찰사(都巡察使)를 지냈다. 병조와 형조의 판서(判書)를 역임, 1467년 좌참찬(左參贊)으로 평안도(平安道) 제언목장급전사(堤堰牧場給田使)되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했고, 다시 경상좌도 군용체찰사(慶尙左道軍容體察使)로 나갔다. 같은 해 우찬성(右贊成)으로 함길도(咸吉道) 도체찰사(都體察使)․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을 겸직하여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 이듬해 무송군(茂松君)에 봉해지고 팔도군적사(八道軍籍使)가 되었다. 1469(예종 1) 우의정(右議政)을 거쳐 좌의정(左議政)이 되고, 1470(성종 1) 영의정(領議政)에 승진, 이듬해 좌리 공신(佐理功臣) 1등이 되어 무송 부원군(茂松府院君)에 진봉(進封)된 뒤 사직, 이듬해 다시 우의정(右議政)으로 예조(禮曹) 판서(判書)를 겸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