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3(정조17)~1874(고종11). 자(字)는 정수(정叟), 호(號)는 침계(梣溪), 시호(諡號)는 효문(孝文), 행임(行恁)의 아들. 1843년(헌종 9)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규장각(奎章閣) 직각(直覺)을 거쳐 교리(校理)가 되고, 성균관(成均館) 대사성(大司成)․이조(吏曹) 참의(參義)를 역임했다. 1848년 황해도(黃海道) 관찰사(觀察使), 이듬해 병조 판서(兵曹判書)가 되고, 1850년(철종 1) 지실록사(知實錄事)로 찬수 당상(纂修堂上)․교정 당상(校正堂上)을 겸직, 「헌종실록(憲宗實錄)」의 편찬과 교정에 참여했다. 그 뒤 예조(禮曹) 판서(判書)․함경도(咸鏡道) 관찰사(觀察使)․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이조(吏曹) 판서(判書)를 지내고 1856년 규장각(奎章閣) 제학(提學)으로 주자소주관(鑄字所主館) 당상(堂上)이 되어 규장각의 활자를 주자(鑄字), 그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이어 판의금부사에 재임했다가 1858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치사했다. 경사(經史)에 밝았고, 특히 비지(碑誌)에 조예가 깊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