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영조 38)~1801(순조 1). 자(字)는 성보(聖甫), 호(號)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시호(諡號)는 문헌(文獻), 용안군(龍安君) 종주(宗柱)의 손자, 익찬(翊贊) 염(琰)의 아들. 1782년(정조 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이듬해 홍문관(弘文館) 벼슬에 등용되고, 검열(檢閱)로 초계문신(抄啓文臣)이 되었다. 이어서 규장각 대교(奎章閣待敎)․주서(注書)를 역임, 1792년 이조(吏曹) 참의(參義)․대사간(大司諫), 다음해 비변사(備邊司) 제조(提調)를 역임하는 동안 시파(時派)로서 특히 왕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1794년 정리사(整理使)가 되고, 1800년 정조(正祖)가 죽자 제술관(製述官)으로 왕의 시장(諡狀)을 썼다. 이해 순조(純祖)가 즉위하자 도승지(都承旨)로 선혜청 제조(宣惠廳提調)․관상감(觀象監) 제조(提調)를 겸직, 이어 이조 참판(吏曹參判)․부제학(副提學)을 지내고, 이조 판서에 승진, 이듬해 양관(兩館)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헌종(憲宗) 초에 신원(伸寃되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