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선조 39)~1637(인조 15). 자(字)는 성백(成伯), 호(號)는 임계(林溪)․고산(高山)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현감(縣監) 형갑(衡甲)의 아들. 22세에 생원(生員)이 되고, 1631년(인조 9)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듬해 설서(設書)가 되었으며, 1636년(인조 14) 이조 정랑(吏曹正郞)․부교리(副校理)에 이어 교리(校理)로 있을 때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화의를 극력 반대했다. 난 후에 척화론자(斥和論者)로 몰려 청나라에 잡혀가서 갖은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다가 오달제(吳達濟)․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심양(瀋陽)의 서문(西門)밖에서 사형되었다. 광주(廣州)의 현절사(顯節祠), 강화(江華)의 충렬사(忠烈祠), 평택(平澤)의 포의사(褒義祠), 홍산(鴻山)의 창렬서원(彰烈書院), 영주(榮州)의 장암 서원(壯巖書院)에 제향(祭享),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