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9(중종24)~1601(선조34). 자(字)는 경수(敬修), 봉사(奉事) 식(湜)의 아들, 광해군의 장인. 명종(明宗) 초에 진사(進士)가 되고, 1562년(명종 17)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1585년(선조 18)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고,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숙소(宿所)에서 실화(失火)하여 문죄(問罪)당했다. 이어 우승지(右承旨)로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에 왕을 호종, 피난을 갈 때 보산연에 이르러 종묘서 제조(宗廟署提調)가 되어 종묘의 신주(神主)를 송도(松都)에 임시로 매혼(埋魂)했다. 이해 형조 참판. 1594년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이듬해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를 지내고, 1597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공조 판서(工曹判書)를 거쳐 다음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호조(戶曹) 판서(判書)를 지냈다. 1600년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가 죽자 빈전도감(殯殿都監)과 인산도감(因山都監)의 제조(提調)가 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