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중종 12)~1548(명종 3). 자(字)는 장원(長源), 호(號)는 취부(聚夫)․성부(醒夫), 정랑(正郞) 시걸(時傑)의 아들. 1537년(중종 32) 진사(進士)가 되고, 1543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이듬해 사가 독서(賜暇讀書)했으며, 주서(注書)가 되어 유구(瑜球)에 표류했던 박 손(朴 孫)의 경험담을 토대로 1546년(명종 1)「유구풍속기(瑜球風俗記)」를 저술했다. 1548년 부수찬(副修撰)이 되었으나 이해「시정기(時政記)」필화 사건(筆禍事件)으로 참형(斬刑)된 안명세(安名世)를 위해 변명하다가 사형되었다. 시문(詩文)에 능하고, 1567년(선조 즉위) 복관(復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