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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윤씨] 윤효손(尹孝孫)

작성일 : 2017-11-17 11:57

1431(세종 13)1503(연산군 9). ()는 유경(有慶), ()는 추계(楸溪), 시호(諡號)는 문효(文孝), 순창(淳昌) 군수(郡守) 처관(處寬)의 아들. 1450(세종 32) 생원(生員)이 되고, 1453(단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에 임명되고, 저작(著作)․박사(博士) 등을 거쳐 1457(세조 3) 전농 주부(典農主簿)가 되었다. 이해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 우헌납(右獻納)에 특임(特任)되었으며, 예조 정랑(禮曹正郞)․사예(司藝)․검상(檢詳)․사인(舍人)을 역임한 뒤 부모의 봉양을 위하여 장흥 부사(長興府使)로 나갔다가 1468(세조 14)에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이 되었다. 1470(성종 1) 통례원(通禮院) 좌통례(左通禮)로서 「경국대전(經國大典)」․「오례의주(五禮儀註)」를 수찬(修撰)하고, 호조(戶曹) 참의(參議)․예조(禮曹) 참의(參議)를 역임했으며, 1475년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크게 치적을 올려 금단의(錦段衣) 한 벌을 하사(下賜)받고, 공조(工曹)․형조(刑曹)․이조(吏曹) 참판(參判), 경상도(慶尙道) 관찰사(觀察使)․한성부(漢城府) 우윤(右尹)․대사헌(大司憲)을 역임했다. 1489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고,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오는 길에「활민대략(活民大略)」․「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등의 책을 구입하여 왕에게 진상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했다. 다시 기용되어 나주(羅州) 목사(牧使)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우빈객(世子右賓客)을 겸임, 1491년 황해도(黃海道) 관찰사(觀察使)가 되었다. 1493년 경상도(慶尙道) 양전순찰사(慶尙道量田巡察使), 이어 한성부(漢城府)의 좌․우윤(左右尹), 형조(刑曹) 판서(判書)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으로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管)․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등을 겸직,「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498(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한때 파직 당했다가 이듬해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이 되고, 우참찬(右參贊)을 거쳐 1503년 좌참찬(左參贊)에 이르러 죽었다. 남원(南原)의 방산 서원(方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