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4~1851 자는 상언(祥彦) 호는 계정(溪亭) 공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이 있어 팔순 조모님을 극진히 모심에 임종(臨終)에 탕재를 올릴때가 추운겨울철인데 할머니께서 이어 고기와 비둘기고기를 원하매 애써 얼음을 깨니 한자잉어가 뛰어나왔고 창문을 열고 비둘기 구하기를 기원하니 비둘기 한쌍이 방으로 날아 들어와 봉진하였으니 이 모두 효심이 지극한 소치라 향중 유림이 수차 천양코져 회의를 하였으나 공은 신하가 충을 함이 마땅하고 자식된 자 효도함이 마땅하거늘 하고 고집으로 사양하매 유림이 이기지 못하고 천거를 포기하였다. 이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조상의 효심을 기리고자 효자비(孝子碑)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