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1584자(字)는 극기(克己), 호(號)는 산당(山堂). 또 천방(天放). 조선조 때 경서(經書) 와 사기(史記)에 통달하고 문장(文章)이 뛰어났다. 사마시(司馬試)합격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學文)에 열중하여 후진(後進)양성에 힘썼다. 1574년(선조 7) 여름에 큰 가뭄이 들자 그는 상소(上疏)하여 제단(祭壇)을 쌓고 살신기우(殺身祈雨) 할 것을 결심하고, 높이 쌓아올린 장작더미 위에 (正坐)하고 기원(祈願)하면서 나무에 불을 지르니 갑자기 큰 비가 내렸다. 왕(王)이 이를기특하게 여기고 천방(天放)이라는 호(號)를 내렸다. 공은 자품(資稟)이 순수하고 풍채가 괴위(魁偉)하면서도 일생을 낙천적으로 지내면서 마을이름을 자하동(紫霞洞)사는집을 정정당(定靜堂)사랑채를 불우당(不憂堂)집앞에 못을 완묘호학지심지(琓妙好學之心池)라 이름하고 평생을 풍류와 환락(歡樂)으로 살으셨다 장흥(長興)의 예양서원(汭陽書院)과 장성 송계서원. 순천 월계사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