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6(선조 9)~1616(광해군 8). 자(字)는 장경(長卿), 수운 판관(水運判官) 응상(應商)의 아들. 정철(鄭 澈)․김장생(金長生)의 문인. 생원(生員)으로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주서(注書)를 거쳐 1604년에 병조 좌랑(兵曹佐郞)으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왕조실록(王朝實錄)의 재간(再刊)에 참여했다. 이듬해에 울산 판관(蔚山判官), 이어 북평사(北評事)․직강(直講)․용양위(龍驤衛) 부호군(副護軍) 등을 역임. 1615년(광해군 7) 서장관(書壯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세상의 질서를 받던 정 철(鄭 澈)의 문인인데다가 간신 이이첨(李爾瞻)의 미움을 받아 하급 관리로 생애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