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1(순조 31)~1899(광무 3) 자(字)는 윤익(允翼), 호(號)는 범재(凡齋), 시호(諡號)는 숙민(肅敏), 석우(錫愚)의 아들. 1864년(고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1874년 전라우도 암행어사(全羅右道暗行御史)가 되고 승지(承旨)를 거쳐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가 되었다.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에 승진, 1884년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이듬해 인천 부사(仁川府使)로 감리인천구통상사무(監理仁川口通商事務)가 되고, 1893년 대사헌(大司憲)에 올랐다. 이듬해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일어나자 삼남 염찰사(三南廉察使)로 나가 혼란한 민심을 수습했고, 이해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신내각 이 수립될 때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