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5(선조 38)~1670(현종 11) 자(字)는 중숙(重叔), 호(號)는 창랑(滄浪),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황(愰)의 아들. 1630년(인조 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보직되고, 정언(正言)을 거쳐,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설서(說書)로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왕을 호종(扈從)했다. 이듬해 돌아와 지평(持平)이 되고, 1638년 충청도 염문사(廉問使)를 거쳐 수찬(修撰)․평안도 도사(平安道都事), 이어 수찬(修撰)․의성 현령(義城縣令) 등을 역임, 1648년 이조(吏曹) 정랑(正郞)에 올랐다. 1651년(효종 2) 좌승지(左承旨)로 재직 중 김자점(金自點)이 처형되고 그 일당이 제거될 때, 평소에 그와 안면이 있었다 하여 극형(極刑)을 선고받았으나 좌의정 한흥일(韓興一)이 과거 그가 김자점 일당의 천거를 거부한 사실을 들어 구명(救命)을 호소, 면천(沔川)에 부처(付處)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뒤 등용되어 태복시(太僕寺) 정(正)․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를 거쳐 한성부(漢城府) 좌윤(左尹)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