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 호(號)는 벽해(碧海). 평북 철산(平北鐵山) 출신. 3․1 운동 후 최시흥(崔時興)이 이끄는 천마산대(天麻山隊)에 소속되어 행정기관의 파괴, 일본의 밀정 암살, 일본인 사살등 항일운동을 했다. 1920년 일본 경찰의 습격을 피하여 천마산대를 따라 남만주로 망명, 육군 주만 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중대장이 되고, 1923년 제 3중대장을 역임하다가 조선혁명당군(朝鮮革命黨軍)의 총사령(總司令)에 취임했다. 뒤에 중국 의용군총사령(中國義勇軍總司令) 이춘윤(李春潤)과 함께 한중 연합군(韓中聯合軍)을 조직, 1932년 흥경(興京) 영릉가(永陵街)에서 일만 연합군(日滿聯合軍)을 격파, 흥경현성(興京縣城)을 함락했다. 이해 다시 영릉가(永陵街)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왕청문(汪淸門)으로 퇴각, 재기를 도모하던 중 일본 첩자(諜者)의 유인으로 통화 현두도구(通化縣頭道溝)에서 일본군(日本軍)에 포위되어 독립군 전원과 함께 순국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