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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원씨] 원두표(元斗杓)

작성일 : 2017-11-06 11:44

1593(선조 26)~1664(현종 5) 자(字)는 자건(子建), 호(號)는 탄수(灘叟)․탄옹(灘翁), 시호(諡號)는 충익(忠翼), 원계군(原溪君) 유남(裕男)의 아들, 박지계(朴知誡)의 문인.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이 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624년 이 괄(李 适)의 난 후에 전주부윤(全州府尹)을 거쳐 나주 목사(羅州牧使)․전라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에 어영 부사(御營副使)로서 남한산성을 지키고, 1642년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승진, 뒤에 강화부 유수(江華府留守)․경상도 관찰사를 역임, 이동안 서인(西人)의 공서(功西)에 속하여 청서(淸西)를 탄압하다가 같은 파인 김자점(金自點)과 정권 다툼으로 분당(分黨)하여 원당(原黨)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호조 판서로 한때 파직 당했고, 1651년 좌찬성(左贊成)․좌참찬(左參贊)을 지내고, 1654년 병조 판서가 되어 김 육(金 堉)이 실시하려는 대동법(大同法)을 반대했다. 1656년(효종 7) 우의정, 1662년(현종 3) 좌의정에 올라 내의원(內醫院)과 군기시(軍器 寺)의 도제조(都提調)를 겸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