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06 11:34
1561(명종16)~1631(인조9) 자(字)는 관보(寬甫),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증 좌의정(贈左議政) 호(豪)의 아들. 일찍부터 용력(勇力)으로 이름을 날리고, 1583년(선조 16) 무과(武科)에, 1586년 무과중시(武科重試)에 각각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 율(權 慄)의 휘하에 있다가 죄를 짓고 벌을 받게 되자 전공을 세울 것을 자청, 이어 적진에 뛰어들어 왜적 여러 명을 베고 돌아와 용서받았다.
1596년 강원․충청 강로조방장(江原忠淸江路助防將)을 지내고, 이듬해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분의복수군(奮義復讎軍)의 장령(掌令)으로 활약, 1605년 창성 부사(昌城府使)를 거쳐, 뒤에 지충주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이 되고 원계군(原溪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