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06 11:23
?~1435(세종 17) 시호(諡號)는 양도(襄悼), 검교중추원부사(檢校中樞院副使) 빈(賓)의 아들. 판사(判事) 민 부(閔 富)에게 양육되어 민씨 성을 쓰다가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가 사역원 부사(司譯院副使)에 이르러 원씨로 환원했다. 중국어에 능하여 1403년(태종 3) 계품사(計稟使)의 통사(通 事)로 명나라에 다녀온 것을 위시해서 누차 명나라에 왕래했고, 한 확(韓 確)의 누이동생이 명나라에 좌군첨총제(左軍僉摠制)로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동행하고 돌아왔다.
이듬해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사은사(謝恩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419년(세종 1) 백지 화자진헌사(白紙火者進獻使)로, 1424년 우군총제(右軍摠制)로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각각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그후 평양(平壤)․안주(安州)의 선위사(宣慰使)로 누차 명나라의 사신을 접대했고, 1428년 명나라 황후의 책립(冊立)을 축하하러 진하사(進賀使)로, 이듬해 계품부사(計稟副使) 등 전후 21회에 걸쳐 명나라를 왕래하여 대명외교(對明外交)에 공헌 했다. 1432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이듬해 인순 부윤(仁順府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