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06 11:19
1323(충숙왕10)~1366(공민왕15) 시호(諡號)는 문정(文定), 첨의평리(僉議評理) 선지(善之)의 아들. 문과(文科)에 급제, 춘추관 수찬(春秋館修撰)에 보직되어 안 진(安震)․이제현(李齊賢) 등의 추천으로 그들이 공무로 시강(侍講)에 나가지 못할 때마다 충혜왕에게 시강했으며, 충목왕 때 헌납(獻納), 충정왕 때 서해도 안렴사(西海道按廉使)가 되었다. 1351년 공민왕이 즉 위하자 내서사인(內書舍人)으로 좌부대언(左副代言)을 겸임하여 국가 기밀의 사무를 맡아보면서 더욱 왕의 신임을 받게 되고, 지주사(知奏事)에 전임되어 관리의 전형(銓衡)에 참여했다.
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이 있자 왕을 모시고 피난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으며, 8년 동안 기무(機務)를 관장했으나 수차 사퇴를 주청하여 결국 이 강(李 岡)과 교대한 뒤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가 되어 충근찬화공신(忠勤贊化功臣)의 호를 받았다. 1365년(공민왕 14)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으나 얼마 뒤 신 돈(辛 旽)의 미움을 받아 파직, 이듬해 병사했다. 특히 시문으로 이름이 높았고, 예학(禮學)에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