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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죽산안씨] 안방준(安邦俊)

작성일 : 2017-11-03 11:34

1573(선조 6)1654(효종 5) ()는 사언(士彦), ()는 은봉(隱峰)․우산(牛山), 시호는 문강(文康),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중관(重寬)의 아들. 중돈(重敦)에게 입양(入養). 보성(寶城) 출신. 박광전(朴光前)․박종정(朴宗挺)에게서 수학(修學)하다가 1591(선조 24) 판산(坡山)에 가서 성 혼(成渾)의 문인이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광해군(光海君) 때 이이첨(李爾瞻)이 그 명성을 듣고 기용하려 했으나 거절하였다. 1614(광해군 6) 보성(寶城) 북쪽 우산(牛山)에 들어가 후진을 교육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 교유(交遊)가 깊던 공신(功臣) 김 유(金 瑬)에게 글을 보내 당쟁을 버리고 인재를 등용하여 공사(公私)의 구별을 분명히 할 것을 건의했다. 이듬해 동몽 교관(童蒙敎官)․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 등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학문에 전심하면서 정묘호란(丁卯胡亂)․병자호란(丙子胡亂) 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의병을 일으켰다. 효종(孝宗) 초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임명되었으나 다시 거절, 후에 지평(持平)․장령(掌令)․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했다. 성리학(性理學)에 밝았으며 정몽주(鄭夢周)․조 헌(趙 憲)을 가장 숭배, 이들의 호를 한 자씩 빌어 자기의 호를 은봉이라 했다. 이조(吏曹) 판서(判書)에 추증(追贈), 보성의 대계서원(大溪書院), 동복(同福)의 도원서원(道源書院), 능주(綾州)의 도산사(道山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