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號)는 춘곡(春谷). 1391년(공양왕 2) 군자감(軍資監) 소윤(少尹)으로서 서북면 찰방별감(西北面察訪別監)이 되어 명나라와의 밀무역(密貿易) 자(者)를 처단(處斷), 국경지대의 기강(紀綱)을 바로잡았고, 문하사인(門下舍人)을 거쳐 이듬해 병조총랑(兵曹摠郞)으로 정몽주(鄭夢周)가 피살(被殺)되자 그 일파로 몰려 이성계(李成桂)에 의해 유배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조선(朝鮮) 개국 후 다시 등용되어 태종(太宗) 때 경상도 안렴사(慶尙道按廉使)․좌사간(左司諫)을 지내고 예조 참의(禮曹參議)로서 사신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1408년(태종 8) 귀국했고,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거쳐 개성유후사 부유후(開城留後司副留後)로 경기도 도관찰사(都觀察使)를 겸직, 1410년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