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02 11:54
1480(성종 11)~1545(인종 1) 자(字)는 대춘(大春), 호(號)는 학포(學圃), 시호(諡號)는 혜강(惠康), 이하(以河)의 아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3세 때 송 흠(宋欽)의 문하에 들어갔고, 1510년(중종 5)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151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 정언(正言)을 거쳐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했고, 1519년(중종 14) 교리(校理)로 재직중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삭직(削職) 당했다.
1537년 김안로(金安老)가 사사(賜死)된 후 복관(復官)되어 1544년 용담 현령(龍潭縣令)을 지내다 사직했다. 글씨를 잘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