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1-01 16:48
1445(세종27)-1494(성종 25). 자(字)는 극기(克己), 호(號)는 임계(林溪) 뇌계, 음(廕) 의 아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 . 1462년(세조 8) 생원(生員)이 되고 1474년(성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봉상시(奉常寺) 부봉사(副奉事)를 거쳐, 1478년 사가독서(賜峨讀書)한 후 1480년에 거창현감으로 나갔다. 이어서 공조(工 曹) 좌랑(佐郞)을 지내고, 1486년(성종 17) 검토관(檢討官)을 거쳐 이듬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1488년 의현인시고(義縣仁詩藁)」를 편찬하여 왕으로부터 표리(表裏)를 하사 받고, 1494년 장령(掌令)을 거쳐 합천(陝川) 군수(郡守)로 나갔다가 재직 중 병사(病死)했다.
시(詩) · 문(文) ·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삼절(三絶)로 불렸고. 특히 성종(成宗)의 총애가 지극하여 경관직(京官職)에 있다가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외관직(外官職)으 로 나가려 할 때 성종이 만류하다 못해 술잔을 권하며 “이 시럼 부대 갈다 아니 가든 못할 소냐” 하는 시조로 석별의 정을 표했다.
장수(長水)의 창계서원(蒼溪書院), 함양(咸陽)의 남계서원(藍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