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태조 1). 시호(諡號)는 정양(貞襄). 공민왕(恭愍王) 때 안 우(安 祐) 등을 따라 홍건적(紅巾賊)을 평정하여 1363년(공민왕 12) 2등공신에 오르고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1374년 공민왕이 죽자 이인임(李仁任)을 도와 강녕대군(江寧大君 : 우왕)을 옹립(擁立)했으며, 판사사(判司事)를 거쳐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올랐다. 1377년(우왕 3) 양광도 도원수(楊廣道都元帥)로 왜구(倭寇)에게 패전(敗戰), 1383년 양광도 조전원수(楊廣道助戰元帥), 1385년 다시 양광도 도원수 등으로 왜구와 싸워 공을 세우고 찬성사(贊成事)가 되었다. 1388년(우왕 14) 요동정벌(遼東征伐) 때 양광도 도원수로서 좌군 도통사(左軍都統使) 조민수(曺敏修)의 예하에 있었고, 이해 창왕(昌 王)이 즉위하자 육도 도통사(六道都統使)가 되었으며, 이듬해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양광도 도둔곶(都屯串)에 침입한 왜구에게 대패했다. 1389년(공양왕 1)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고, 이듬해 강원군 (江原君)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