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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왕씨] 왕강(王 康)

작성일 : 2017-11-01 16:09

?1394(태조 3) 고려 왕실(王室)의 원친(遠親). 1371(공민왕 20) 회시(會試)에 합격했으나 연소한 것으로 의심을 받아 다음 시험인 전시(殿試)가 정파(停罷)되었다. 뒤에 문과(文科)에 급제, 동진사(同進事)가 되고, 성균관(成均館) 직학(直學)․강녕부 승(江寧府丞)을 거쳐, 1374(공민왕 23) 대군시학(大君侍學)․주부(主簿)를 역임했으며, 우왕(禑王) 때 전리총랑(典理摠郞)을 거쳐 성균관(成均館) 제주(祭酒)로서 서북면 안무사(西北面按撫使)가 되어 유리인(流離人)들을 안집(安集)했다. 1390(공양왕 2)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로서 양광(楊廣)․전라(全羅)․경상도수군도체찰사(慶尙道水軍都體察使) 겸 방어영전 염철사(防禦營田鹽鐵使)가 되고, 예조(禮曹) 판서(判書)를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 겸 전라․경상․양광삼도수군도체찰사(全羅․慶尙․楊廣三道水軍都體察使)가 되어 염철(鹽鐵)․조전(漕轉)․초토(招討)․영전(營田)․선성(繕城)의 일을 겸하여 조운(漕運)의 공이 많았고, 어염(魚 鹽)의 이()로 국가의 재정(財政)을 튼튼히 했다. 태안(泰安)과 서주(瑞州) 접경인 탄포(炭浦)에 운하(運河)를 파서 안흥량(安興梁)의 험로 4백여 리를 통하는 조운을 편리케 하려 했으나, 바닥에 암석이 있고 조수(潮水)가 공사를 방해하여 이루지 못했다. 1392년 예문관(藝文館) 제학(提學)이 되고 이해 조선 개국(開國)으로 거제(巨濟)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 나와 회군공신(回軍功臣)에 추록(追錄)되었으나, 1394년 다시 대간(臺諫)․형조(刑曹)의 탄핵으로 공주(公州)에 유배, 이어 왕씨 일족이 화를 당할 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