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30 16:03
자(字)는 길지(吉之), 호(號)는 도암(韜庵), 언기(彦麒)의 아들. 김인후(金麟厚)․기효간(奇孝諫)의 문인. 1589년(선조 22) 천거로 후릉참봉(厚陵參奉)이 되었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주(全州)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으로 태조의 영정(影禎)․제기(祭 器)와 역대의 실록(實錄)을 내장산(內藏山)에 봉안하고 이듬해 7월까지 지켰다.
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史庫)의 실록이 모두 없어졌으나 전주사고(全州史庫)의 실록이 보존됨으로써, 난(亂) 후에 다시 여러 벌 만들어 오늘날 실록을 볼 수 있게 한 공로자이다. 난이 끝나자 폐정(弊政)의 쇄신과 인심 수습책을 상소, 선조의 동의를 얻고, 사근도찰방 (沙斤道察訪)을 거쳐 태인 현감(泰仁縣監)에 이르렀다. 고창(高敞)의 월계정사(月溪精舍)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