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7(충숙왕 14)~1406(태종 6). 초명은 사정(思正), 시호(諡號)는 공희(恭僖), 절제사(節制使) 광신(廣信)의 아들. 1355년(공민왕 4) 문과(文科)에 급제, 감찰규정(監察糾正)․헌납(獻納)․집의(執義)를 역임, 1389년(창왕 1) 사의대부(司議大夫)가 되고 이해 공양왕(恭讓王)이 즉위하자 이 색(李 穡) 부자(父子)를 폐왕(廢王)의 일파라고 탄핵하는 한편 신 돈(辛旽)의 일당 근절을 간언했다.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 정몽주(鄭夢周) 및 사헌부(司憲府)의 탄핵을 받아 원배(遠配), 1392년(태조 1) 정몽주가 피살되자 복직, 이어 좌상시(左常侍)가 되었다. 이해 이성계(李成桂)가 즉위하자 호조 전서(戶曹典書)에 개국공신(開國功臣) 3등이 되고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졌다. 1394년(태조 3)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교주강릉 도관찰사(交州江陵道觀察使), 이듬해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 1396년 정당문학(政堂文學)․경기좌도 도관찰사(京畿左道都觀察使), 1404년(태종 4)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