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7(선조 20)~1666(현종 7). 자(字)는 여완(汝完), 호(號)는 죽남(竹南), 이조 참판(吏曹參判) 백령(百齡)의 아들. 1618년(광해군 10)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1620년 주서(注書)를 거쳐 지평(持平)․장령(掌令)․필선(弼善)․수찬(修撰) 등을 지냈다. 1639년(인조 17)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주청부사(奏請副使)가 되어 심양(瀋陽)에 다녀왔으며,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썼고, 1643년 등극부사(登極副使)로 1648년 동지 겸 정조성절사(冬至兼正朝聖節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0년(효종 1)에 예조(禮曹) 판서(判書)로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어「인조실록(仁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고, 그후 형조 판서(刑曹判書)․대사헌(大司憲)․우빈객(右賓客) 등을 거쳐 1660년(현종 1) 좌참찬(左參贊)이 되고, 이어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를 잘 써서 여러 번 서사관(書寫官)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