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횡보(橫步)이고 충경공(忠敬公) 22세손으로 1897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일본경응대 문과(文科)에 입학하여 수학 중 기미 3.1운동 전후에 휴학하고 대판(大阪) 노동자를 대표하여 독립선언문을 채택하여 1919년 3월 천왕사(天王寺)에서 궐기하려다 3월6일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옥고를 치르고, 1920년 폐허(廢墟) 동인에 참가, 1921년 첫 작품(作品)인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개벽지에 발표되었고 계속된 문필활동으로 소설, 단편 등 500여 편의 작품을 썼다. 주간종합지 동명(東明)의 기자를 거쳐, 현진건과 함께 시대일보, 매일신보의 기자로 활약하며 평론을 썼다. 1928년에는 “조선일보” 학예부장으로 있었고 1936년에는 육당(六堂)이 고문으로 있던 만선일보(滿鮮日報)의 편집국장을 했으며 해방 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되었고, 1951년에는 해군으로 복무하다 1954년 중령(中領)으로 예편하였다. 그 후 예술원 종신회원과 서라벌 예술대학 초대학장으로 있으면서 작품(作品)활동을 계속하여 서울문화상(文化賞), 아세아자유문화상, 1957년 예술원공로상, 1962년 3.1문화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한국 근대(近代)문학 운동의 중심인물로 그의 문학사적 공로는 사실주의 문학의 확립에 이바지한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