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경공(忠敬公)의 12세손으로 자(字)는 국충(國忠)이고 호는 퇴은당(退隱堂)이다. 1545년 강진군 칠량면 율변리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천품(天品)이 뛰어나고 무예(武藝)에도 탁월하여 아우 서(瑞)와 경(慶) 아들 홍립(弘立)에게도 국가 유사시에 대처하라며 무술을 강론했다. 마침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향리(鄕里)에 침입한 왜적을 격퇴하여 이순신 장군에게도 알려져 1597년 11월에는 의병장(義兵將)이 되고 장흥(長興), 회령진대흥교(會寧鎭大興郊)와 예교(曳橋), 몰운대(沒雲臺) 등지에서 대승을 거뒀다. 충무공과 함께 노량해전(露粱海戰)에 참전하고 이어 거제(巨濟)에서 싸우다가 1598년 11월에 향년 54세로 순국(殉國)하고 이 해 동생들과 아들도 모두 순국(殉國)하였는데 이 네 분을 4충(四忠) 장군이라 하며, 공(公)에게는 선무원종공신 병조판서(宣武原從功臣 兵曹判書)로, 아우 염서(廉瑞)에게도 선무원종공신과 병조참의(兵曹參義), 염경(廉慶)에게는 동부승지(同副承旨), 아들 염홍립(弘立)에게는 이조참의(吏曹參義) 벼슬이 공신록권(功臣錄券)에 추증되었고 칠량면 불무동에 안장하고, 정려(旌閭)가 명하여 졌으며, 매년 유천사(柳川祠)에서 향사(享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