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7 12:15
송은공(松隱公)의 아들로 호는 폐와(閉窩), 1386년 문과에 급제하고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첨지 통례문사(僉知通禮門事)를 지냈다. 1388년 무진지화 이후 고려의 국운(國運)이 쇠퇴(衰退)해 감을 알고 부친을 따라 은거하며 채미가(採薇歌)와 황국시(黃菊詩)를 짓고 높은 절의(節義)를 표하였고 끝내 출사(出仕)하지는 않았다.(麗朝忠烈錄錄 景覽祠誌 참조).
승국명류 표방록(勝國名流 標榜錄)에는 친구 등과 함께 “팔판(八判)“의 한 분으로 지목된다. 고려가 멸망하고 이성계가 정권을 잡자 지은 시(詩)가 ”차라리 죽어서 왕씨(王氏)의 귀신이 되리라 살아서 무엇 하리 죽음이 오히려 빛나도다“하였고, 후손에게 가훈을 남겼는데 ”충효로 근본을 삼고 경학으로 업을 삼아 욕된 관작과 영달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