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名) 화용(和庸), 호는 경은(耕 隱). 1388년 무진화(戊辰禍)가 있은 뒤 경기도(京畿道) 광주군 염곡동에 24년간 은거하여 그의 절의(節義)와 덕행(德行)으로 이름을 떨치니 태종(太宗)이 그를 공조참의(工曹參議)에 발탁하였다. 그 후 중국 변무사(中國辨誣使)로 다녀와 해주 목사(海州牧使)를 지낼 때 황해도 감사(黃海道監司)와 의견 대립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사헌부 · 형조 대간들이 그를 논척(論斥) 하였으나 태종(太宗)과 세종의 신임과 보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