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파공(菊坡公)의 장자(長子)로 호는 송은(松隱)이다. 어릴 때부터 영민(英敏)하고 충효(忠孝)를 근본으로 삼고 덕행(德行)이 바르고 문장(文章)이 높아 1375년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관직이 동지밀직사 상의회 도감사 상호군 판종부사사(同知密直司事 商議會 都監事 上護軍 判宗簿寺事)였으며 목은(牧隱) 길재(吉再)등과 도의(道義)로써 교우했고 무진(戊辰)의 화(禍)는 요행히 피하여 아들 이(怡)를 데리고 만수산(萬壽山 서두문동, 현릉 근처)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이성계가 예조참판(禮曹參判)으로 출사(出仕)케 하려 하였으나 이를 사양하자 그의 절의(節義)를 가상하게 여기고 문과급제(文科及第)하였던 동생 치용(致庸 일명 和庸)을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제수(除授)케 하였다. 송은공(松隱公)은 영송시(詠松詩) 등으로 공(公)의 높은 절의(節義)를 표현하여 정충대절(貞忠大節)함을 짐작케 한다. 나주의 금강서원(錦江書院), 보성의 청계영당(淸溪影堂)에서 유림(儒林)에 의하여 제향(祭享)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