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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염씨] 염흥방(廉興邦)

작성일 : 2017-10-27 12:10

중시조 제신(悌臣)의 둘째 아들로 호는 동정(東亭) 혹은 어은(漁隱)이라 했으며, 공민왕 6(1357)에 문과 장원급제(壯元及第)할 만치 학문(學問)이 높았고 시문(詩文)에도 능달(能達)하여 좋은 작품을 남긴 동정집(東亭集)은 후세에 전해오지 못했고 무예(武藝)에도 걸출했다. 상호군(上護軍)으로 여러 전역(戰役)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고, 지신사(知申事)로는 홍건적(紅巾賊)을 대파하고 서울을 탈환하여 2등공신(二等功臣)이 되고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제학(提學)이 되었다. 1374년 탐라(耽羅: 제주도), 목호(牧胡)의 난에 양광(楊廣), 전라(全羅) 경상도 도병마사(慶尙道都兵馬使)로 최영 등을 데리고 출전하여 이들을 진압했다. 우왕(禑王) 때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뜻에 거슬려 한때 유배되었으나 이어 서성군(瑞城君)에 봉해지고 삼사좌사(三司左使)가 되었다.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여러 번 하여 맹사성, 길재 심온 등 인재를 뽑았으며, 승국명류표방록(勝國名流標榜錄)에는 변안열(辺安烈) 조민수 등과 함께 구충(九忠)”의 한 분으로 되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여주편과 동문선(同文選)이 전해온다. 여러 벼슬을 역임(歷任)되었으며 관직(官職)이 충근익대 섭리찬화공신 중대광 성균관대사성 예문관대제학 상호군 삼사좌사 서성군(忠勤翊戴 燮理贊化功臣 重大匡 成均館大司成 藝文館大提學 上護軍 三司左使 瑞成君)이었으나 신군부세력(新軍部勢力)의 역성혁명(易姓革命)때 고려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가 그들에겐 걸림돌이 되어 모함으로, 1388년 무진(戊辰) 정월(正月)에 형과 동생 및 매부 등 일족 1,000여명이 화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