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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염씨] 염제신(廉悌臣)

작성일 : 2017-10-27 12:09

1304(충렬왕 30 ~ 1382(우왕 8) 파주염씨의 중흥1세조(中興一世祖)로 자는 개숙(愷叔), 호는 매헌(梅軒), 시호는 충경공(忠敬公)이다. 충정공 승익의 손자, 부친은 세충, 아명은 불노(佛奴).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지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문무(文武)를 겸비한 고려의 명신(名臣)이다.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원나라 고모부 말길(末吉-중서평장사)의 집에서 공부하며 자랐다. 총명한 관계로 원(元)의 태정황제(大定皇帝)에게 발탁되어 총애를 받으며 금중의 숙위, 상의사(尙衣使), 정동성낭중(征東省郎中), 익정사승(품계; 봉훈대부) 등을 제수 받았다. 원에서 귀국한 후 충숙왕의 신임을 받으며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1346년(충목왕 2) 광정대부 삼사우사 상호군에 제수된다. 1347년 44세 때 중대광 수성익대 공신호를 받고, 곧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 12월에 찬성사(贊成事)에 제수된다. 1348년 판판도사사에 승진되고 원에 다녀왔다. 1349년 중대광 도첨의찬성사 판판도가 됨. 조일신의 사감(私感)으로 등용치 못하다가 1353년 공민왕이 찬성사에 복직시킨다. 1354년(공민왕 3) 좌정승(左政丞) ·우정승(右政丞)을 지내고 이해 7월 원나라의 요청으로 내란의 평정을 돕기 위해 2천의 군사를 이끌고 지휘관으로 갔다가 10월 공민왕(恭愍王)의 부름을 받고 귀국, 곡성백(曲城伯)에 봉해진다. 한국 관료로는 최초로 프랑크제국(독일) 사신을 접견한 분이라고 전해온다.

1355년 맏아들 국보 과거에 급제하였다. 공민왕의 개혁정책으로 기철(奇轍) 등 친원파(親元派) 처단한 후 원나라의 공격 대비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가 되었고, 곧 수문하시중(守門F侍中) 겸직. 1357년 2남 흥방이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했고, 1357년 판리부사 영효사관사로 승진. 1361년 신돈(辛旽)에게 아부하지 않아 한 때 파직. 1362년 벽상삼한삼중대광 곡성후가 되었다. 1363년 시중(侍中)에 기용되었으나, 공(公)의 모친상으로 사직하였다. 1364년에 영도첨의사사가 되고. 9월에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가 되었다. 1369년 서북도통사에 보국이 더해졌다. 그 후 삼중대광(三重大匡)에 특진, 곡성백(曲城伯)에 봉해졌다. 딸이 공민왕의 부인 신비(愼妃)로 책봉 되었다. 1371년 3남 정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세 아들 모두가 급제함에 따라서 부인권씨가 진한국대부인에 봉해졌다. 1374년(우왕즉위) 영문하사 영서연사 제수 문하시중(門下侍中) 중임(重任). 공민왕 사망 후 잠시 광주 유배, 1375년 72세에 충성수의동덕논도보리공신, 영삼사사가 되고 나머지도 종전과 같게 하였다. 1376년 원나라에서 공(公)에게 자덕대부 장작원사 벼슬을 내렸다. 1379년 판문하사, 부원군으로 다섯 임금을 섬긴 원로가 되심. 1380년 영삼사사가 되고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다섯 임금을 모시면서 출장입상(出將入相)한 공으로 공민왕이 그려준 초상화는 보물 제1097호로 지정(국립중앙박물관 소장)되었다. 1382년(우왕 8) 3월 18일 79세로 별세하니, 충경(忠敬)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1384년 목은 이색이 왕명에 따라 봉교찬한 비문을 새긴 충경공신도비를 장단군 대강면 우근리 묘소 앞에 건립하였다. 충경공의 신도비(神道碑)는 삼절(三絶)로 유명하다. 그 첫째는 공(公)의 뛰어난 위대한 업적이요, 둘째는 당대(當代)의 최고 문장가인 목은 이색(李穡)이 왕명을 받들어 신도비문을 짓고, 셋째는 글씨의 대가인 청성군 한수(韓脩)의 글씨라 하여 삼절(三絶)이라고 하며, 이는 목은 문집(牧隱 文集)에 수록되어 있다. 신도비와 묘소는 이북에 있어 실존 또는 훼손이 염려되나 비문의 탁본(拓本)은 몇몇 후손과 한국정신문화원에 “충경 염공제신지묘’란 제호로 소장되어 있다. 강화 냉정면의 강화사단(江華祀壇), 나주 충경서원(忠敬書院), 보령 수현사(水絃祠), 보성 청계영당(淸溪影堂), 청도 구연사 등지에서 매년 제향(祭享)된다. 정실 자녀 3남 5녀와 서출 2남 2녀를 두었다. 아들 삼형제는 국보,흥방,정수이고, 서자는 혜주,광원이다. 큰따님은 홍길동(洪吉童)의 조부(祖父) 홍징(洪徵)에게, 둘째는 임헌(봉익대부 판내부시사 진현관제학)에게, 셋째는 정희계(추성좌리공신 봉익대부밀직사사 상호군)에게, 4녀가 신비염씨로 공민왕의 다섯째 부인이고, 5녀가 이송(숭정대부 판중추 군부판서)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