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7 11:49
고려(高麗) 초기(初期)에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봉되고 대사도(大司徒)를 지낸 분이다. 그런데 시조 염형명(廉邢明)의 활동 당시의 고려사(高麗史)를 보면 왕건(王建)이 고려를 개국할 때의 공로로 개국이등공신(開國二等功臣)이 된 염상(廉湘)이 있고, 또 서기943년 왕건의 임종과 유언을 받든 유명재상(遺命宰相) 염상(廉相)이 있는데 “상”의 한자가 다르다. 여기서 공신과 재상을 지낸 분들의 이름이 단 한번씩만 거론되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두 염상의 기록에서 한자가 오기(誤記)된 것인지? 아니면 당시 왕건의 행적으로 볼 때 공신이나 장군들에게 성씨(姓氏)나 이름을 하사한 기록이 많은데 혹시 위의 세 분도 그런 경우로 동일인이 아닌지 추정하기도 한다.
고려사에 의하면 시조 이후의 계대(系代)는 “군기감(軍器監) 위(位)의 子 가칭(可偁)을 삼한공신 사도 형명(邢明)의 손(孫)”이라는 기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