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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 심환지(沈煥之)

작성일 : 2017-10-26 15:41

1730 (영조 6) ~ 1802 (순조 2) 자(字)는 휘원(輝遠) 호(號)는 만포(晩圃), 교리(校理) 태현(泰賢)의 손자. 진(鎭)의 아들, 1762년(영조 38) 부솔(副率)에 등용, 1771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교리(校理)를 거쳐 1787년(정조 11) 호서암행어사(湖西暗行御史)가 되었다.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을 역임, 1792년 형조참판으로 평택안핵어사(平澤按覈御史) 김희채(金熙采)의 탄핵으로 금갑도(金甲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 이해에 풀려 나와 이듬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복직 이어 대사성(大司成)으로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를 겸직했다.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능주목사(綾州牧使) 양관제학(兩館提學)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을 역임하였다. 김종수(金鍾秀) 윤시동(尹蓍東)과 정치적 동지로서 신임의리(辛壬任義理)의 고수를 표방하고 이에 위배되는 남인계열의 채제공(蔡濟恭) 이가환(李家煥) 이승훈(李承薰)의 징토(徵討)에 앞장서서 이단배척을 역율(逆律)로 할 것을 주장하였고 1798년 우의정(右議政)에 임명되어 이후 벽파(僻派)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순조가 즉위한 후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영의정에 오르고 원상(院相)으로서 정권을 장악하고 스스로 세도를 진정시킬 것을 자임하였으나 실제로는 당동벌이(黨同伐異)에 주력하여 반대파 인물들을 크게 살육하였으니 이 사건이 신유사옥(辛酉邪獄)이다. 그가 죽은 후 많은 사건을 일으킨 죄로 비판을 받고 관직이 삭탈되었으나 죽을 때까지 검소한 생활을 한 점은 칭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