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5:17
1684 (숙종 10) ~ 1747 (영조 23) 자(字)는 이천(而天) 능주목사 봉휘(鳳輝)의 아들. 일찍이 진사가 되고 성균관장의(成均館掌議)가 되었다. 1715년(숙종 41) 유 계(兪 棨)의 저서인「가례원류(家禮源流)」의 발문을 둘러싸고 노론․소론간에 싸움이 일어나 노론이 패할 때 성균관에서 쫓겨났다가 마침내 소론이 실각하고 노론이 득세하게 되자 등용되어 익릉참봉(翼陵參奉)이 되었다. 1725년(영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주서(注書) 설서(說書) 부수찬(副修撰)을 거쳐 예문관(藝文館) 삼사(三司)의 요직을 지내고 대사간(大司諫)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대사헌을 역임했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