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5:09
1674 (현종 15) ~ 1736 (영조 12) 자(字)는 여규(汝揆) 시호(諡號)는 청헌(淸獻), 증영의정 속(涑)의 아들. 1669년(숙종 25)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장령(掌令)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1721년(경종 1)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실록청 당상을 겸했고,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에 재직 중 소론의 탄핵으로 관직을 삭탈당하여 한때 향리에 은거했다. 1725년(영조 1) 다시 등용되어 예조판서(禮曹判書) 우참찬(右參贊)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세자빈객(世子賓客)을 거쳐서 1727년 이조판서(吏曹判書)가 되었으나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등장하자 파직되어 낙향했다가 이듬해 다시 등용, 홍치중(洪致中)과 함께 이인좌 난의 원인을 소진하고, 경종 때 처형된 노론 4대신의 신원을 건의했다. 이조판서(吏曹判書)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 좌참찬(左參贊)을 시켰으나 모두 취임하지 아니했다. 분무원종훈(奮武原從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