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4:08
1593 (선조 26) ~ 1662 (현종 3) 자(字)는 원지(源之) 호(號)는 만사(晩沙), 설(偰)의 아들. 1620년(광해군 12)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승문원 정자(正字)에 등용되었으나 광해군의 폭정과 권신 이이첨(李爾瞻)의 대북파 횡포가 심해지자 낙향하여 은거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이듬해 검열(檢閱)에 기용되고 저작(著作)겸 설서(設書)를 지냈으며 정언 (正言) 수찬(修撰)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쳤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에 인조(仁祖)를 호종하였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노모를 간호하다가 왕이 피신한 남한산성으로 달려갔으나 성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고 조익(趙翼) 윤계(尹棨)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려 했으나 화의가 성립되었다. 조정관리 중 직접 왕을 호위하지 못한 자를 논박할 때 삭출 당하여 영남의 봉로처(奉老處)의 객사에 부치어 무척 곤궁하였다. 1638년에 죄가 없음을 인정받아 홍주목사(洪州牧使)에 임명되었고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와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를 지냈으며, 1653년 정조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후 이듬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어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러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1657년 동지 겸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영의정(領議政)겸 세자사(世子師)에 올랐다. 글씨에도 능했으며 영천(永川)의 송곡서원(松谷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 만사고(晩沙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