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4:05
1587 (선조 20) ~ 1632 (인조 10) 자(字)는 덕용(德用)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현감(縣監) 엄( )의 아들. 인조의 종모제(從母弟). 광해군의 난정(亂政)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은거하던 중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으로 청운군(靑雲君)에 봉해지고 부총관이 되었다. 이듬해 이 괄(李 适)의 난 때 인조(仁祖)를 공주(公州)로 호종(扈從), 그 공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이 되어 호위대장(扈衛大將)을 겸했다. 그 후 세자빈의 가례를 반대하다가 충주로 유배되어 1년 만에 풀려 나왔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에 왕을 호종하여 강화에 피난했고, 내섬시제조(內贍寺提調)를 지낸 뒤 원주목사(原州牧使)를 역임하였으며 좌참찬(左參贊)에 추증되었다. 진무원종훈(振武原從勳) 영사원종훈(寧社原從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