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3:39
1551 (명종 6) ~ 1602 (선조 35) 자(字)는 사진(士進) 호(號)는 만사(晩沙), 관찰사(觀察使) 전(銓)의 아들. 1573년(선조 6)에 진사가 되고, 1580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형조정랑(刑曹正郎) 정언(正言) 지평(持平)을 역임하였다. 1593년(선조 26)에 진주사(陳奏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고 돌아와 승지(承旨) 춘천부사(春川府使) 호조참의(戶曹參議)를 거쳐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승진했다. 이때 서울에 주둔한 명병(明兵)의 행패가 심하므로 명나라 경리(經理) 양 호(楊 鎬)에게 이를 항의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여 그들의 미음을 받아 파직되었다. 1600년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이 되었고, 죽은 뒤 1604년(선조 37)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청계부원군(靑溪府院君)에 추록되고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