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3:35
1546 (명종 1) ~ 1599 (선조 32) 자(字)는 원택(元擇) 호 빈죽(賓竹),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 자(鎡)의 아들. 1564년(명종 19) 진사(進士)가 되고 1583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장원급제, 전적(典籍) 형조좌랑(刑曹佐郞)을 거쳐 지평(持平) 정언(正言) 예조정랑(禮曹正郎)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해운판관(海運判官)을 역임했다. 1589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으로 상관에게 미움을 받아 선천군수(宣川郡守)로 좌천당했다가 신병으로 사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원수(都元帥) 김명원(金命元)의 종사관으로 한강과 임진강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하였다. 이천(伊川)에 왕세자를 찾아가서 필선(弼善)이 되었다가 이어 강원도에 들어가 군대를 모집했다. 그 후 군기시정(軍器寺正) 파주목사(坡州牧使) 사간(司諫) 헌납(獻納)을 역임, 1597년(선조 30)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어 산성을 수축했다. 다음해 영남에 있는 명나라 군사의 군량을 조달하는 직책을 맡고 원활히 수행했다. 죽은 뒤 여러 번 벼슬이 추증되어 이조판서(吏曹判書)에 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