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3:32
1545 (인종 1) ~ 1594 (선조 27) 자(字)는 공직(公直) 호(號)는 사양당(四養堂) 시호(諡號)는 충익(忠翼),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아들. 인순왕후(仁順王后 : 명종비)의 동생, 1564년(명종 19)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72년(선조 5) 친시문과(親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 정언(正言)에 발탁되고, 이듬해 홍문관에 등용되었다. 이어 예조좌랑(禮曹佐郞)를 거쳐 1575년 이조정랑(吏曹正郎)에 천거되었으나 앞서 형 의겸(義謙)의 배척을 받은 김효원(金孝元)에 의해 이조(吏曹)의 벼슬이 척신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반대가 제기됨으로써 등용되지 못하고 동서 분당이 더욱 촉진되었다. 그 후 지평(持平) 헌납(獻納)을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승진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참판(兵曹參判)으로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가 되어 선조를 평양에 호종했고, 병조판서(兵曹判書) 이항복(李恒福)과 함께 의주에 피난할 것을 역설, 이어 분조를 설치한 세자(光海君) 호위의 명을 받아 왕과 헤어져 성천에 이르러 세자를 모시고 일본군의 방위에 힘썼다. 1593년 호조와 병조의 참판으로 우빈객(右賓客)을 겸직, 군량미의 조달에 큰 활약을 했고, 이듬해 병조판서(兵曹判書)에 특진되었다. 글씨를 잘 썼으며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으로 청림군(靑林君)에 추봉되었다. [저서] 사양당집(四養堂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