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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심씨] 심의겸(沈義謙)

작성일 : 2017-10-26 12:22

1535 (중종 30) ~ 1587 (선조 20)  자(字)는 방숙(方叔) 호(號)는 손암(巽庵),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강(鋼)의 아들. 이 황(李 滉)의 문인. 1555년(명종 10)에 진사(進士)가 되고, 156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이듬해 병조좌랑(兵曹佐郞)을 거쳐 정언(正言) 부수찬(副修撰) 교리(校理)를 역임, 그 해 외숙 이 양(李 樑)이 사화를 일으켜 새로이 정계에 진출한 사림들을 숙청하려고 하자 왕의 밀지를 받아 이 양(李 樑)을 탄핵, 유배하도록 하여 사람들을 보호했다.

1564년 지평(持平) 검상(檢詳) 사인(舍人), 이듬해 사간(司諫) 부응교(副應敎) 1566년에 집의(執義) 직제학(直提學) 동부승지(同副承旨)를 역임, 1569년 좌승지(左承旨) 대사간(大司諫), 1572년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지내는 동안 구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척신 출신이지만 사림(士林)들 간에 명망이 높아 선배 사류들에게 촉망을 받았다. 이때 김종직(金宗直) 계통의 신진세력으로서 김효원(金孝元)이 정계에 등장하여 김계휘(金繼輝)에 의해 이조정랑(吏曹正郎)으로 천거되자, 김효원(金孝元)이 일찍이 명종조(明宗朝)의 권신이던 윤원형(尹元衡)의 집에서 기숙한 사실을 들어 권신에게 아부했다 하여 이를 반대했다. 1574년(선조 7) 결국 김효원(金孝元)이 이조정랑(吏曹正郎)에 발탁되고, 이듬해 그의 아우 충겸(忠謙)이 이조정랑(吏曹正郎)에 추천되자 이번에는 김효원(金孝元)이 전랑(銓郞)의 직분이 척신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 하여 반대함으로써 두 사람은 대립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구세력은 그를 중심으로 서인, 신진세력은 효원(孝元)을 중심으로 동인이라 하여 동서분당이 발생하였다. 이에 부제학 이 이(李 珥)는 1575년 그를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로 효원(孝元)을 부령부사(富寧府使)로 전직시켜 당쟁을 조정하려했으나, 이미 뿌리박힌 양당의 대립은 해소되지 못했다. 그 후 사직하고 파산(破山)에 내려가 있다가 1580년 예조참판(禮曹參判)으로 등용, 함경도관찰사(咸鏡道觀察使)로 전직되어 정인홍(鄭仁弘)의 탄핵을 받았으나 이 이(李 珥)의 변호로 무사했고, 1582년 전주부윤(全州府尹)이 되었다. 나주의 월정서원(月井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