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1:43
1394 (태조 3) ~ 1493 (성종 24) 자(字)는 위수(渭叟) 호(號)는 면암정(面巖亭), 판사(判事) 의구(義龜)의 아들. 공조.예조.이조의 좌랑(吏曹佐郞)을 역임했으며 함창.홍산.홍천.태인등의 현감을 지냈다. 1448년(세종 30)에 숙부 안효공(安孝公)의 피화를 항의 직언했다가 간신들의 미움을 받아 남방(南方)에서 5년간 귀양살이를 했으며 보성(寶城)땅으로 옮겨 살다가 사면(赦免)되었다. 단종이 손위(遜位)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둔하여 외출을 금하고 살았으며 세조가 세 차례나 불렀으나 끝내 나가지 않았고, 종제(從弟) 공숙공(恭肅.公)이 조정에 나올 것을 강력히 권했으나 역시 나가지 않았다. 임천거사(林泉居士)라 이름하고 세상을 멀리하고 살았으며 1493년(성종 24) 마침내 100세를 일기로 별세하니 성종께서 애석하게 여기고 장례를 돕고 특별히 좌승지(左承旨)를 증직하니 이는 이례적인 은전(恩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