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17-10-26 11:39
1375 (우왕 1) ~ 1418 (세종 즉위) 자(字)는 중옥(仲玉) 시호(諡號)는 안효(安孝),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의 다섯째 아들. 고려말 12세(우왕 12)에 진사(進士)가 되고, 1392년 조선 개국 후 병조(兵曹) 공조(工曹)의 의랑(議郞)을 거쳐 정종 때 대호군(大護軍), 1404년(태종 4) 상호군(上護軍) 겸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로 승진, 1407년 좌부대언(左副代言)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역임했다. 태종 8년 세종(世宗)이 잠저에 있을 때 장녀(長女 : 昭憲王后)가 충녕군(忠寧君)의 배위로 간택되었고 1411년 풍해도관찰사(豊海道觀察使) 대사헌(大司憲), 1414년 형조판서(刑曹判書)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를 역임하고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제수되었다. 1418년 태종의 선위로 세종이 즉위하자 국구(國舅)로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에 봉군되고 영의정(領議政)이 되어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갔을 때 불경사건(不敬事件 : 戊戌獄事)이 발생하였다. 아우 도총제 정( )이 병조참판 강상인과 만났을 때 내금위(內禁衛)에 군사의 결원(缺員)이 심하여 시위(侍衛)가 허소(虛疎)하다고 한 말이 빌미가 되어 상왕(上王)께 무고(誣告)하고 국문(鞠問)하니 심 정이 고문에 못 이겨 형을 끌어들여 말하기를 “신(臣)의 형이 말하기를 군사는 마땅히 한 곳으로 귀결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박 은(朴 訔)이 끝까지 모함(謀陷)하고 주청(奏請)하여 병조판서 박 습(朴 習) 참판 강상인(姜尙仁) 동지총제 심 정(沈 )을 주살하고 심 온(沈 溫)을 그 수괴로 몰아 명나라에서 귀국할 때 의주(義州)에서 피체, 한양으로 압송된 후 수원에서 자진(自盡)하였다.. 그 뒤 1451년(문종 1) 신원복작(伸寃復爵)되고 안효(安孝)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