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字)는 총지(聰智)이고 호(號)는 빙월당(氷月堂)이며 원효대사(元曉大師)와 요석궁(瑤石宮) 공주(公主)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라(新羅) 10현의 한 사람으로 관직(官職)은 한림(翰林)을 지내고 주로 왕의 정치(政治) 자문(諮問)을 맡았다. 유학(儒學)과 문학(文學)을 깊이 연구(硏究)한 학자(學者)로써 일찍이 국학(國學)에 들어가 학생(學生)을 가르치고 유학(儒學)발전(發展)에 기여(寄與)했다. 그가 창제한 이두(吏讀)는 중국(中國)의 한문(漢文)에 토를 다는 것으로 당시(唐詩) 한문(漢文)을 배우고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가 이두(吏讀)를 창제(創製)했다고 하나 진평왕(眞平王) 시대의 서동요(薯童謠)와 선덕여왕(善德女王) 시대의 풍요(風謠) 등이 이두(吏讀)로 기록되어 있는 점을 미루어 보아 그가 창제(創製)한 것이 아니라 집대성(集大成)한 것으로 보인다. 화왕계(花王戒)로서 신문왕(神文王)을 충고(忠告)한 일화(逸話)도 전한다. 고려(高麗) 현종 13년 서기 1022년 홍유후(弘儒侯)에 추봉(追封)하고 문묘(文廟)에 배향(配享)되었다. 경주(慶州) 서악서원(西岳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