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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순창설씨] 설사(薛 思)

작성일 : 2017-10-24 13:01

(617686) : 어릴 때 이름은 서당(誓幢)이고 법명(法名)은 원효(元曉)이고 호()는 화쟁(和諍)이며 내마(柰麻) 설담날(薛談捺)의 아들이다. 하상주(下湘州:경북 경산군 자인면)출생(出生)으로 그의 어머니 꿈에 유성이 품속에 드는 것을 보고 원효(元曉)를 잉태(孕胎)하여 만삭(滿朔) 몸으로 압량군(押梁郡)의 남불지촌(南佛地村) 율곡(栗谷) 마을을 지나다가 사라수(娑羅樹) 아래에 이르러 갑자기 아이를 낳았는데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기록(記錄)하고 있다. 28세에 승려(僧侶)가 되어 황룡사(黃龍寺)에 들어갈 때 집을 희사(喜捨)하여 초개사(初開寺)를 세우고 사라수(娑羅樹) 옆에도 절을 세워 사라사(娑羅寺)라 하였다. 영취산(靈鷲山) 의 낭지(郎智), 흥륜사(興輪寺)의 연기(緣起)와 고구려(高句麗) 반룡산(盤龍山)의 보덕(普德) 등을 찾아다니며 불도(佛道)를 닦으니 뛰어난 자질(子姪)과 총명(聰明)이 드러났다. 34세에 동학(同學) 의상(義湘)과 함께 불법(不法)을 닦으려 당()나라에 가던 중 요동(遼東)에 이르러 어느 무덤사이에서 하루 밤을 자게 되었다.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는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 속에 더러운 물이었음을 알고 급히 토()하다가 깨닫기를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事物)과 법()이 태어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필생칙종(必生則種)종법생(種法生) 심멸칙촉(心滅則髑)촉불이(髑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 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 하면서 유학(留學)을 포기(抛棄)하고 본국(本國) 신라(新羅)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뒤 분황사(芬皇寺)에 있으면서 독자적(獨自的)인 통불교(通佛敎:원효종, 분황종, 해동종이라고 함)를 제창(提唱)하여 민중(民衆)속에 민중불교(民衆佛敎)를 보급(普及)하는데 노력(努力)하엿다. 하루는 마음이 들떠 거리에 나가 노래하기를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는가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라 하였다.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이 듣고 대사(大師)가 귀부인(貴婦人)을 얻어 슬기로운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하고 요석궁(瑤石宮)에 홀로된 공주(公主)를 짝이 되게 하니 과연(果然) 공주(公主)가 아이를 배어 설총(薛聰)을 낳았다. 스스로 실계(失戒)한 원효(元曉)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자칭(自稱)하면서 속세(俗世)의 복장(服裝)을 하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다가 우연(偶然)히 한 광대(廣大)가 괴상(怪狀)한 박()을 가지고 춤과 민담(民譚)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물건을 만들어 화엄경(華嚴經)의 일체무애인(一切無㝵人)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에서 무애(無㝵)를 따다가 박의 이름을 짓고 무애가(無㝵歌) 라는 노래를 지어 춤추고 노래하며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에 세상(世上) 사람들 중 염불(念佛)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으니 원효(元曉)의 교화(敎化)가 그렇게 성과(成果)가 있었다. 그 는 불교사상(佛敎思想)을 종합(綜合)하여 실천(實踐)한 정토교(淨土敎) 선구자(先驅者)이며 98240()의 책()을 저술(著述)한 저술가(著述家)이기도 하였다. 70세 되는 해 혈()()에서 생()을 마쳤다. 고려(高麗) 숙종조(肅宗朝)에 대성화정국사(大聖和靜國師)라는 시호(諡號)를 주었다.